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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고종

ˍ 2020. 9. 22.

(선을 넘는 녀석들 설민석의 고종에 대한 역사 강의 내용 정리. 배우 문가영이 출연하였다.)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고종이 정치적 조력자를 찾아야 하는데 옆에 아내 명성황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명성황후하고 같이 한번 나의 나라를 만들어봐야지라고 노력을 한다. 그렇게 대략 한 10년이 흘러 1894년 갑오년이 된다. 갑오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고 동학농민운동의 진압을 명분으로 청나라를 부른다. 그러니까 일본도 따라 들어온다. 그런데 따라 들어온 일본이 돌아가지 않고 경복궁을 둘러싼다. 둘러싸고 너희 나라의 잘못된 전근대적인 정치제도를 바로잡아 주겠다고 그러면서 우리 정치를 다 자기 입맛에 맞게 다 뜯어고친다. 그게 갑오개혁이다.

 

을미사변

그러다가 명성황후 시해 을미사변이 일어난다. 을미사변 직후에 고종의 마음이 어땠겠는가. 내 아내를 욕보이고 그리고 그 비명을 나와 내 아들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본인들이 어떤 짓을 하냐 하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나서 갑오개혁을 이어서 을미개혁이라는 걸 하는데 그 을미개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는가? 단발령이다.

 

단발령

당시 조선 사람들은 신체발부는 수미부모라고 해서 체모를 절대 자르질 않았다. 그러니까 당시 의병이 일어났는데 최익현 선생이 내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차라리 목을 잘라라.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온 백성이 반대했다. 일본인들은 고종이 모범을 보이라 이거다. 당신부터 잘라, 이렇게 된 것이다.

고종은 강단이 있어서 절대 안 잘라,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측근, 대신이라는 것들이 전하, 지금 궁궐 주변에 대포를 설치해서 머리를 자르지 않는 놈들은 다 대포를 쏴 죽여버리겠습니다. 이래도 안 자르시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고종은 그래서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정말 고종은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내도 그렇게 잃고 머리도 잘리고 나의 이 민족의 혼과 정신도 잘려나가고.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 상황에서 이 경복궁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살해 현장이기도 하고 일본이 둘러싸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마침 친러파들이 와서 전하, 러시아 공사관으로 일단 몸을 피신하시죠 라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바로 친러파 이완용이다.

 

아관파천

고종은 궁녀가 타는 가마를 타고 자신의 아들 순종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으니 이걸 아관파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 거기에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고종이 나름대로 그 좁은 방 안에서 정국을 구상한다. 내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겠다. 그런데 지금 가만 보니까 일본도 황제야, 청나라도 황제야, 러시아도 황제야. 나만 왕이네? 나도 황제가 돼야겠다. 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제국, 황제의 국가를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을 하고 딱 1년 만에 환궁을 하는데 경복궁에는 일본이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겠는가. 그래서 지금의 덕수궁인 경운궁으로 환궁을 한 것이다.

 

환궁과 환구단의 건립

여차 하면 옆에 유럽 공사관들이 다 있으니까 또 일본이 세게 들어오면 유럽하고 손을 잡으려고 약간 등거리 외교를 하려고 바로 옆에 있는 덕수궁으로 환궁을 했다. 내가 제국을 만들겠다. 그런데 제국을 만들려면 황제 즉위식을 해야 할 것인데 원래 조선의 왕은 하늘에 제사를 못 지낸다. 그건 중국 황제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제 황제가 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데 제단이 없다, 그래서 만든 것이 환구단이고 아래 보이는 것이 환구단의 부속 건물인 황궁우 이다.

 

이것은 대한제국의 시작이며 우리가 하늘과 손잡은 근대의 상징물이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황궁우는 뭐냐 하면 태조 이성계와 선조들의 신위를 모시는 일종의 신전이다. 그리스로 따지면 신전이다, 여기 자리가 원래 명나라,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던 자리인데 그 자리에 일부러 환구단을 만든 건 사대정신 끊겠다, 독자적인 나라 제국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 하늘을 상대하는 제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바로 그 상징성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1915년에 일제가 여기 자리에 의도적으로 조선물산공진회라고 식민업적을 자랑하고 알리려고 요즘 표현으로 하면 엑스포 같이 연 건데 강제병합의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 것이다. 조선물산공진회에 외국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숙소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환구단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어서 올리고 거기에 또 외국 사람들을 머물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환구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60년대에 우리나라도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하니까 우리도 호텔이 필요하다 해서 다 허물고 70년에 지금의 현대식 20층짜리 호텔로 만든 거라고 한다.

 

당시 조선의 황족들은 강제 병합을 하면서 일본의 왕족이 돼버린 거니까 하늘에 제사 지낼 수 있는 건 일본 천황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들 표현으로 천황. 우리 표현으로 일왕. 그래서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고종이 아관파천에서 환궁한 이후에 다른 사람이 된다. 우리가 알던 고종이 아니고 굉장히 정치에 재능을 보인다.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원대한 꿈을 꾸면서 1897년 고종이 아닌 광무황제께서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대, 멋진 신세계의 문을 열게 된다.

 

명성황후의 장례

이제 온 백성의 어떤 축하와 응원 아래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의미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국호부터가 대한제국이다. 그리고 나서 이 광무황제가 자신의 아내 명성황후의 장례를 치른다. 명성황후가 1895년에 시해를 당하고 장례는 1897년인데 황제 즉위를 해서 왕후가 아닌 황후로 더 높이 추존하기 위해서 1897년 장례를 치른 것이다.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은 을미사변 이후에 자신이 며느리의 청부 살해범, 배후, 중전의 살해범으로 몰리면서 사실상 대원군은 모든 게 무너졌다. 그리고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면서 명령을 내린 게 뭐냐 하면 대원군은 아버지가 아니고 대원군에게 존봉의절을 다시 시행하라(속뜻은 다시 가둬라). 그래서 러시아 공사관 가서 명령 내려서 아버지를 다시 잡아들인다. 

 

대원군은 그 이전부터 정말 아들을 보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입궐할 수 있을까. 자식 얼굴 한번 볼 수 있을까. 그런데 때가 왔다. 그게 언제냐. 바로 고종의 탄신일, 생일이 온 것이다. 그래서 그때 입궐해서 자식 한번 보려고 한다. 아버지가 입궐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고종은 대원군을 만나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모든 권력과 자신의 추억들을 남겨놓고 하늘의 별이 되는데 죽기 전에 유언이 있다. <매천야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2월 2일, 대원군 하응이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는 79세였다. 이하응은 병이 위급할때 이재면을 불러 내가 주상(고종)을 알현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냐고 하였다. 이렇게 세번을 말하자 이재면은 죄를 지을까 그 말을 감히 알리지 않고 있었다. 잠시후 그는 다시 어가가 오지 않느냐고 물은 다음 긴 탄식을 하고 운명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목이 메도록 통곡하였다.-

 

죽을 때까지 아들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고종은 장례식도 가지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참 가슴 아픈 것이 장례식도 가지 않은 광무황제께서 통곡을 하는데 얼마나 대성통곡을 하셨는지 그것이 대궐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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