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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광주 일가족 살해범과 제주 살인 방화 사건

ˍ 2020. 9. 20.

(19일 방송된 그알 1232회 내용 정리)

살인 범죄을 은폐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범죄를 저질러 자수한 남자?

제주에 사는 한 남성이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에게 제보를 했다. 살인과 방화,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은 한 남자인 김씨를 알고있다는 것이다. 제보자가 김씨를 만난 곳은 교도소 였다고 한다. 김씨는 2006년 기숙사에 들어가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한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씨의 범행은 제주지역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김씨는 자신이 과거 학생사감이었던 기숙사에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한 것은 그가 범행 현장을 떠나기 전 스스로 작성한 메모를 두장 남긴 점이었다. 메모에는 "형사님들, 나 찾기 쉬울거요"라고 적었다. 당시 형사과장은 김씨가 범죄를 저지르고 자기 신분을 노출시킨 후에 자수한 점이 특이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수감 동기인 제보자는 김씨가 큰 범죄를 숨기기 위해서 그 기숙사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온거다 라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의혹은 사실로 드러나는 듯 했다고 한다. 뉴스에 대학 기숙사 강도 사건으로 구속된 용의자가 그 전에 살인사건을 저질러놓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기숙사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나왔다는 것이 보도된 것이다.

 

그 살인사건은 김씨가 기숙사 사건으로 자수하기 한달여 전 발생한 것이다. 지난 2006년 2월 18일 새벽 0시 32분경 제주시 노영동 소재 원룸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이 시작된 곳은 205호.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드러난 것은 한 여성의 시신이었다. 

당시 부검의의 설명에 따르면 시신은 침대 위에 상반신을 걸치고 있는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있고 그렇게 엎드린 자세에서 하의가 벗겨져있고  다른 외투나 이런 것들은 그대로 입고 있는 상태이고, 제압당하고 또 특히 어떤 성과 관련된 범죄, 그 상태에서 살해되고, 범인은 증거인멸을 위해 방화를 한 것으로 보았다. 



피해자의 사인은 무언가에 코와 입이 막혀 숨을 쉬지못해서 숨지는 비구폐색성 질식으로 추정되었다. 안타깝게도 시신에서는 범인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경찰은 무엇을 근거로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김씨를 특정했던 것일까? 현장에서 담배꽁초가 하나 발견되어 경찰은 이를 국과수에 감식 의뢰했고 그 결과 김씨의 DNA와 일치했다고 한다. 당시 뉴스는 경찰이 그를 강간, 살인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렇다면 이미 14년 전에 해결된 일인 건데, 제보자는 왜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에게 노형동 원룸 방화사건을 알려온 것일까?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8개월 뒤 김씨를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유는 증거 불충분. 하지만 제보자는 아직도 노형동 사건의 진범이 김씨라고 믿고 있다. 김씨가 피해자가 어떤 자세로 숨져있었는지를 정확히 설명해줬기 때문이다. 수사관계자만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말이다. 

김씨는 광주 일가족 살해범

그런데 놀랍게도 김씨는 지난 2014년 광주에서 알고지내던 여자의 집에 꽃바구니를 들고가서 여자와 그의 어머니, 중학생 딸까지 일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이었다. 잔혹하게도 후라이팬등으로 마구 때리고 랩으로 얼굴을 감싹 질식시켰다고 한다. 만약 김씨가 지난 2006년 발생한 제주 방화 살인으로 감옥에 갔더라면 광주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김씨의 어머니

김씨의 어머니는 노형동 방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아들이 지목되자 자기 아들의 구명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그알 제작진이 김씨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벨을 누르자 그녀는 "가세요 다시 한 번만 벨 누르면 신고합니다!"라고 했고, 제작진이 신고하셔도 되지만 얘기좀 하자가 하니까 "알아서 하세요 뭐 당신네들이 방송국에 있다고 대단한 줄 알아!"라고 했다. 제작진은 경찰을 통해 연락처를 남겼고, 얼마후 김씨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온다. 

 

전화를 한 김씨의 어머니는 "그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방송국 놈들'이라 그러데요? 저는 방송국 사람들 말 안믿습니다" 라고 앙칼지게 말했다. 그리고 김 씨 어머니에 따르면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이 발생한 뒤 경찰이 곧바로 현장을 감식했지만 담배꽁초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아들 김씨가 기숙사 사건을 저지르고 경찰에 자수를 하면서 이상한 일들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사건과 상관없는데도 아들이 피우는 담배에 대해 여자친구에게 캐물었다는 경찰. 당시 김 씨가 피우던 담배는 디스플러스 였다. 공교롭게도 이후 경찰이 사건 현장을 재감식하면서 원룸 주변에서 디스플러스 꽁초가 발견됐고 거기에서 아들의 DNA가 확인됐다는 게 김 씨 어머니의 주장이다.

 

전소된 사건 현장에서 처음에는 찾지 못했던 담배꽁초를 재감식 중 발견한 경찰.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분명 수상할 수 있는 정황이다.  또한 범행 시각 아들이 205호에 가지 않았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고 한다. 노형동 원룸 205호에서 불길이 시작됐던 2006년 2월 18일 새벽 0시 32분 경. 그 시각 아들은 PC방에서 게임에 접속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 증거마저 이유 없이 무시했다는 당시 수사팀. 김 씨 어머니는 당시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들은 표창을 받거나 특진을 했다고 한다. 정말 실적을 위한 조작이었을까. 제작진이 당시 형사들을 만나려고 하면 모두 외근이거나 만나기를 거부했다. 

 

처음 김 씨에 대해 알려왔던 제보자는 김씨가 검찰에게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자신을 수사했던 형사들을 무더기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형사들이 그 일로 오랜 시간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보자는 14년 일이라 잠시 잊었던 중요한 사실이 최근 떠올랐다고 했다. 당시 205호 피해자의 향수와 귀금속을 김씨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선물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유족은 당시 김 씨가 여자친구에게 선물한 향수가 205호 피해자의 것이 맞다고 경찰에 확인해줬다고 한다. 정황상 김 씨에게도 의심스러운 점이 상당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 바로 원룸 주변에서 뒤늦게 발견됐다는 담배꽁초이다. 김 씨 측은 이를 조작된 증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유력한 증거, 담배꽁초

제주지방경찰청의 설명에 따르면, 김 씨 측의 주장과 달리 담배꽁초는 화재 발생 3일 뒤 원룸 주변이 아니라 원룸 내부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실제 국과수에 확인해 본 결과 이 담배꽁초는 김 씨가 기숙사 사건으로 자수하기 전에 이미 감식이 의뢰됐다. 이후 기숙사 사건 때문에 김 씨의 DNA를 감정하는 과정에서 그의 DNA가 원룸에서 나온 담배꽁초의 DNA와 일치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김 씨의 어머니는 범행 시각 아들이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 컴퓨터 로그 기록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어찌 된 일일까. 사건 장소인 205호와 마주한 201호. 화재 전날 낮 12시 경 201호 입주민은 비명 소리에 복도로 나와봤고 그 순간 205호 현관문이 닫히는 걸 목격한다. 이후 피해자의 생활 반응은 없었다. 그로부터 12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 날 새벽 0시 8분 경. 피해자의 휴대폰 전원이 인위적으로 꺼졌고 이후 원룸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즉, 범인은 205호를 두 번 방문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살해가 이루어졌을 걸로 추정되는 시각과 방화가 발생한 시각 모두 김 씨의 알리바이는 비어 있다. 사건 현장은 김 씨가 있었다는 PC방에서 차로 8분 거리이다. 알리바이까지 무너진 상황에서 김 씨가 피해자의 물품을 우연히 주워 여자친구에게 선물한 점 역시 설득력을 잃을 만한 주장이다. 게다가 담배꽁초라는 확실한 물증까지 있는데 김 씨는 왜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걸까.

 

김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이유가 담긴 사유서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청했지만 이를 공개할 경우 수사상 현저히 곤란하다며 검찰은 공개를 거부했다. 담배꽁초와 알리바이. 이 중요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김 씨를 무혐의 처분한 검찰. 그 시절 검찰의 판단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을 제작진에게 알려준 이는 김 씨의 어머니였다. 검찰이 김 씨를 무혐의 처분한 뒤 그의 어머니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아들을 용의자로 보도했던 언론사들에 대한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 대상자들 중에는 SBS도 포함됐다. 그러니까 바로 SBS의 문서 보관고에 관련 서류가 남아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과정은 재판과 유사한 만큼 당시 김 씨 측이 SBS에 사건 관련 서류를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제작진은 서류를 찾아냈다.

 

담배꽁초는 원룸에서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던 중 발견이 됐다고 한다. 신기한 건 전소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는데도 꽁초의 상태가 꽤나 양호한 점이다. 조금만 더 타버렸다면 아마 이 DNA를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기숙사 사건으로 김 씨가 수감된 상황에서 경찰은 국과수로부터 꽁초의 DNA와 김 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받다. 때문에 기간 제약이 적었던 경찰은 평소보다 더욱 꼼꼼히 수사를 한 뒤 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고 한다. 물론 담당 검사로부터 수사가 충분하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이 당시 수사 자료 또한 모두 검찰로 송치해서 현재 경찰에는 관련 서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왜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뒤 검찰은 돌연 김 씨에게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했던 걸까.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결정을 8장의 무혐의 처분 사유서를 읽고 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205호에 살던 이모 씨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마도 이 씨가 집으로 들어가던 순간 그 존재를 드러냈을 범인. 그날 205호를 찾아온 불청객을 김 씨로 단정하지 못한 검찰의 이유는 바로 이 8장의 무혐의 처분 사유서에 담겨 있을 것이다. 제작진과 함께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검찰의 무혐의 처분 사유서를 분석하고 행간에 숨은 의미까지도 꼼꼼하게 읽어내주기로 했다. 먼저 범죄의 형태를 제대로 알아야 검찰의 판단이 왜 경찰과 달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살인과 방화라는 범행이 강조됐지만 사건의 시작은 금전과 성 때문이라고 한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경찰은 피해자의 금품 중 일부가 사라진 걸로 판단했다. 경찰은 범행 시기 서울에서 온 여자친구와 쓸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김 씨가 205호에 침입했다가 살인을 저질렀고 이후 증거 인멸을 위해 방화를 했다고 추정했다. 검찰 역시 범인의 범행 목적이 돈이라는 점에 동의지만 사건 발생 9일 전 김 씨 계좌에 70만 원이라는 돈이 입금된 점을 강조했다. 이미 쓸 돈이 충분한데 김 씨가 왜 여자친구와 사용할 경비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사건 당시 제주 소재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 씨. 그에 대한 취재를 이어가던 중 제작진은 의외의 단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26살에 대학에 입학한 김 씨는 학회비를 관리했다고 한다. 김씨의 대학 동기가 MT 당일 장을 보기위해 김씨에게 연락하니 연락이 안되었고 나중에 교도소에서 미안하다는 손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사건 당시 김 씨 수중에 있던 돈은 그의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2006년 3월 학과 신입생 MT를 앞두고 자신이 과거 학생 사감으로 일했던 기숙사에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김 씨. 그는 피해자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고 자신에 대한 정보가 담긴 메모도 현장에 남겼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스스로 경찰에 자수한다. 경찰은 그가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기숙사 사건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달랐다. 노형동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되지 않는 시점에 굳이 기숙사 사건 같은 중범죄를 일부러 저지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큰 죄를 감추기 위해 다른 범죄를 일부러 저질르는 케이스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1년 2월, 전라남도 나주의 드들강 유역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고생. 당시 경찰은 시신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을 발견했지만 DNA가 일치하는 대상을 찾지 못해 드들강 살인사건은 오랜 시간 미제로 남겨졌다. 다행히 지난 2012년 대검찰청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찾아낸 범인. 그는 드들강 살인사건 이후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범행 직후 당시 유행하던 한 SNS 매체에 공개적으로 죄를 인정한다는 글을 남긴 김 씨.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학과 교수님과 동기들에게도 자신이 범인임을 밝히는 문자를 전송했다고 한다. 물론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사건에는 살해의 순간이 찍힌 CCTV 녹화 영상이나 살해 도구에 남은 범인의 DNA 같은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증거는 있다. 바로 김 씨의 DNA가 확인된 담배꽁초의 존재이다. 

 

205호 안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의 증거 능력을 검찰은 왜 의심했던 걸까. 검찰은 누군가 김 씨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일부러 범행 현장에 그가 피운 담배꽁초를 가져다 뒀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한다. 또한 국과수의 결과를 인용해가며 꽁초에서 발견된 DNA가 다른 사람의 것일 확률이 8억 2천만 분의 1이므로 100% 김 씨가 피운 담배꽁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그렇게 가장 위력적인 증거는 힘을 잃었던 것이다. 하자만 그알 제작진이 만난 전문가들은 8억 2천만 분의 1의 확률이라는 것은 범인이 김씨가 맞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100% 김 씨가 피운 담배가 맞다는 수학적 표현을 곡해하면서까지 검찰은 왜 담배꽁초를 의심했던 걸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찰은 김 씨가 자수하기 이전, 즉 김 씨의 존재를 모르던 시점에 담배꽁초를 원룸 내부에서 발견했다. 어떻게 한 달 뒤 기숙사 사건을 벌일 김 씨를 미리 예상해서 증거를 조작할 수 있을까. 화재 발생 사흘 뒤 잿더미 속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던 수사팀. 분명 칭찬받아야 할 이들은 검찰이 김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조작 의혹의 당사자가 돼버렸다. 

 

1차 감식에서 담배꽁초를 찾지 못한 건 맞지만 현장을 완벽하게 보존한 상태에서 수사 중이던 형사들이 발견했다고 한다. 감식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양호했다는 꽁초. 사실 이 부분도 검찰의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신 주변으로 켜켜이 쌓였던 옷가지들을 하나씩 들춰보는 과정에서 바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서 발견된 꽁초여서 상태가 양호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전 국과수 화재감식요원의 말에 따르면, 겨울철 창문이 닫힌 좁은 원룸이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화재가 작은 규모였을 거라고 한다. 화염보다는 연기와 열이 더 많았을 거라는 노형동 원룸 화재 현장. 이 경우 바닥 쪽에 옷가지로 덮여 있던 담배꽁초가 타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확실하게 하려면 당시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관계자의 기억도 확인해야 한다. 그날 인명 구조를 위해 가장 먼저 205호로 들어갔던 구조대원의 말에 따르면 화염이 아닌 연기와 열기만 가득했다는 205호 내부. 그런 화재 현장에서는 정말 멀쩡한 담배꽁초가 발견될 수 있을까. 

 

노형동 원룸 205호 화재 현장은 시신 주변으로 다량의 옷가지가 쌓여있었다. 담배꽁초가 발견된 위치는 바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 그 위로 옷가지가 덮여 있었다. 화재 현장 사진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범인이 시신 주변으로 옷가지를 쌓고 옷에 불을 붙이는 식으로 방화를 시도했다고 분석한다. 제작진이 사건이 벌어진 원룸과 비스한 환경으로 세트장을 만들어 옷에 불을 붙여놓은 뒤 겨울철 창문이 닫혀 있던 205호의 조건처럼 문을 닫았다. 화염이 모든 걸 삼켜버린 듯 보이는 현장에서도 담배가 멀쩡한 채로 있었다.

 

검찰이 김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이유가 담겨 있는 이 무혐의 처분 사유서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제작진에게 했다고 한다. 바로 담배꽁초가 어디에서 발견됐냐는 질문이었다. 이 무혐의 처분 사유서에는 총 8차례에 걸쳐 담배꽁초가 언급이 되는데 담배꽁초가 발견된 장소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예를 들자면 이 사유서를 최종적으로 결재하는 윗사람들이라면 이 서류만 보고 담배꽁초가 205호 원룸 내부에서 발견된 걸 알 수 있었을까? 검찰의 서류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서류를 작성한 검사가 일부러 담배꽁초에 대한 정보를 애매하게 표현한 듯하다고도 분석을 한다.

 

205호 내부에서 그것도 김 씨가 기숙사 사건을 벌이기 전에 발견된 담배꽁초라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었다면 이 무혐의 처분 사유서가 쉽게 결재를 통과했을지도 의문이다. 이 무혐의 처분 사유서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검찰이 오래 사건을 묵혔고 이례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이례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말이다.

 

사건을 송치받은 김모 검사와 박모 검사

왜 이렇게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에는 이례적인 일들이 많았던 걸까.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 역시 같은 의문을 품고 제주지검을 찾았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가 충분하다며 사건을 송치받았던 이는 김모 검사. 하지만 8개월 뒤 증거가 부족하다며 김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검사는 박모 검사였다. 경찰 출신의 박 변호사는 검찰이 8개월이나 사건을 묵힌 뒤 불기소 처분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김모 검사는 유학 준비도 해야 하고 하다 보니까 이 사건에 대해 열중을 하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이 사건을 다시 맡은 검사는 자신이 처음부터 맡은 사건이 아니다보니 기록만 보고 결정하지 않았나 하고 추측한다고 했다.

 

지난 2006년 2월 발생한 이 사건을 경찰이 검찰로 송치한 때는 2006년 6월이다. 그런데 검찰이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에 지정한 사건 번호는 2007년의 것이다.  유독 이 사건에는 이례적인 일들이 많았던 걸로 보인다. 2006년에 송치된 사건이 2007년에 번호를 갖게 된 이유는 사건을 종결한 검사가 알고 있을 것이다. 13년 전 김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검사는 현재 서울의 한 지검에서 근무한다.

 

제작진이 지검을 찾아갔다. 그 검사를 제작진이 따라가서 여쭤볼것이 있다고 하자 몇마디 없이 그냥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제작진이 어렵게 수소문한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봤는데 바쁘다며 끊는다. 수상해 보이는 사건 번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검사뿐이다. 다음 날 대신 대답을 해온 공보검사는 시한부 기소중지나 기소중지 됐다가 다시 한 번 재기가 되면 사건번호가 바뀐다, 감정 같은 거를 보내때 결과가 회신 될 때까지 기소중지 한다 라고 해서 사건을 중간처분을 한다, 감정 결과가 오게 되면 그걸 가지고 다시 사건을 재기를 하는 거다, 그러면 사건 번호가 2007이 된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검사가 이 사건 같은 경우에 그 사유로 기소중지가 한번 됐었다라고 말을 했는지 묻자 공보검사는 그 검사가 자신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건 아닌데 그런 경우가 있지 않느냐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검찰은 피의자 구속 기간의 제약 때문에 최장 20일 안에 피의자를 재판에 세울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재판에 세우면 기소 아니면 불기소이다. 20일이라는 구속 기간 제약 때문에 사건 진행을 중지하는 여러 절차들이 존재하는데 특히 이 시한부 기소 중지는 주로 의료사고와 같이 전문가의 감정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경우 선택된다.

 

이에 대해 부장검사 출신의 민 교수는 시한부 기소중지는 그렇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감정결과라고 하는 것은 결과를 보기 위해서 1년, 2년 걸리는 상황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기소중지를 한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어차피 피의자가 그 당시에 구속 기소가 돼서 신병 문제와 관련해서 구속만기에 쫓긴다든지 그런 것 때문에 사건을 빨리 종결을 했다가 다시 재기를 해야 되고 그런 상황은 전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를 받을 당시 기숙사 사건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김 씨. 노형동 사건의 경우 검찰에게는 애초부터 구속 기간의 제약이 없었다. 정식으로 담당 검사와의 인터뷰를 검찰에 요청했지만 사건은 법에 따라 제대로 처리됐으며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라 담당 검사가 기억이 완벽하지 못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거절해 왔다.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을 8개월간 묵혔던 검찰이 이를 종결한 때는 사건 발생 1년여 뒤인 2007년 2월 23일. 그날 제주지검으로 오는 새 지검장에 대한 인사가 이루어진 건 그저 우연일까. 민 교수는 인사철이 되면 결재하는 것도 조금 느슨해질 수 있고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들로 김 씨를 무혐의 처분했던 검찰. 그렇다면 이후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제주지방검찰청 관계자는 종결된 사건이면 담당하는 사람이 없다, 무혐의가 종결됐으면 재수사 할 이유가 없죠, 종결됐는데 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족이 진정서를 내시거나 국민청원을 하거나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13년 전 김 씨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뒤로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은 주인 없는 사건으로 남겨졌다. 가족을 잃은 황망함, 견디기 힘든 그 폭풍 속에 여전히 유족들은 남겨져 있다. 노형동 원룸 방화 사건 피해자의 유족은 김씨가 뒷배경이 대단한 사람이거나 뭐 그래서 그걸 검찰에서 무마시켰거나 그랬다면 저희가 억울하고 뭐 그런 게 있을 텐데 되게 평범한 사람 아니냐고 말했다. 수사기관을 불신할 수 없어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는 유족.

 

새로운 증거

제작진이 205호 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 여성의 억울한 죽음이 내내 수사기관들에게는 잊혀져 있었다. 미지의 사건이지만 미지의 사건이 아닌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 이제 와 다시 사건을 수사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당시 검찰이 제3자의 범행일 수 있다며 배제했던 증거들만으로는 어렵다. 즉 새로운 단서가 필요한 것이다.  사건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증거였던 담배꽁초. 거기서 김 씨의 DNA가 발견됐지만 그것만으로는 그가 살인과 방화를 저질렀음을 확신할 수 없다고 본 검찰. 그러니까 이 담배꽁초의 증거력을 보강할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그에 대한 힌트는 13년 전 검찰이 줬다. 김 씨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검찰은 그가 과거에 범행을 할 때는 피해자를 묶거나 입을 막았는데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의 피해자에게서는 결박과 입막음 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범행 수법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범행 수법, 그것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또 하나의 지문과도 같은 것이다.

 

꽃바구니를 든 살인범. 김 씨는 지난 2001년 특수강도부터 2014년 광주 일가족 살인까지 총 세 건의 범죄로 처벌을 받았다. 지난 2001년 자신이 에어컨을 설치했던 집에 점검을 왔다며 속이고 들어간 그는 생선회칼로 피해자를 위협한 뒤 전화선으로 양팔을 뒤로 묶고 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두 번째 범행은 앞서 봤던 기숙사 사건이다. 그는 범행 뒤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메모를 남겼다. 김 씨가 침입했던 그 기숙사 방에서 당시 생활을 했다는 제보자. 범행이 있던 그날은 제보자가 외박을 한 날이었다고 한다. 김씨가 기숙사 방에 빨간색 립스틱으로 죽여버릴꺼야 라고 메시지를 남긴 남겼다고한다. 제보자는 그가 방 안에 남긴 흔적이 더 있었다고 기억한다. 기숙사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흔적은 그가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와 박스테이프였다. 확인 결과 그가 휴대하던 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한 뒤 입 안에 수건을 넣고 가지고 온 테이프를 입에 붙였다.

 

양손을 결박도 했는데 피해자의 티셔츠를 이용했다. 그로부터 8년 뒤 광주 일가족 살해범으로 돌아온 김 씨.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을 불기소했던 검사의 추측이 맞다면 광주 사건에서도 김 씨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양손을 결박했을 것이다. 피해자들에게서는 그 같은 흔적이 발견됐을까. 양손을 결박당한 흔적은 없지만 범인에게 저항하면서 손에 생기는 저항흔 역시 없었다고 한다.  범행의 방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피해자가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주 일가족 살해 현장에서는 어딘가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테이프 조각들이 집 안 곳곳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2시간 10분 만에 가족 3명을 연속 살인한 뒤 태연히 도주했던 김 씨. 그런데 CCTV에 보이는 그가 맨 배낭에 뭔가가 달려 있다. 언뜻 사용한 뒤 떼어내 접착도가 떨어진 박스테이프로 보인다. 혹시 테이프로 피해자들을 결박한 뒤 도주 전 제거했던 건 아닐까.

 

같은 범인이 한 범행의 수법은 같다는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그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양손을 결박했을 것이다. 결박이나 입막음의 흔적이 없어 김 씨의 범행 수법과 다르다고 평가된 방화 사건.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이지만 다행히 얼굴과 팔 부위는 불로 인해 훼손되지 않았는데 발견 당시 입막음과 결박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흔적도 있다. 입과 코에서 나온 잔거품인데 이는 힘든 호흡으로 폐부종이 발생해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단지 침구에 파묻힌 것만으로는 질식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몸에서 확인된 상처는 머리 뒷부분과 등 쪽의 피하 출혈. 이는 범인에게 눌리면서 생긴 걸로 추정된다.

 

양손이 자유로웠다면 숨을 쉬기 위해 저항을 했을 법한데 역시 저항흔이 없었다.  발견 직후 찍은 피해자의 사진에서는 양 뺨과 입 주변으로 물결 무늬의 주름과 작은 크기의 피부 까짐이 다수 확인됐다. 무엇이 만든 흔적일까. 전문가는 이를 테이프로 추정했다.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뒤 증거 인멸을 위해 다시 205호를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에서 결박과 입막음의 흔적은 얼마든지 제거됐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범인이 연출한 최후의 모습만으로는 범행 수법을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범인이 지워버린 흔적도 우리는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거센 화염조차도 지워버릴 수 없는 범인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의문은 이제부터 이 사건을 누가 풀어가야 하냐는 것이다. 

 

그날, 205호를 방문했던 불청객. 화마가 모두 지워준 듯했던 그의 흔적은 내내 205호 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보이는 만큼 보면 볼 수 없지만 보고자 하는 만큼 보면 볼 수 있는 범인의 은밀한 시그니처이다.제작진은 경찰이든 검찰이든 아니면 두 기관이 함께하든 재수사를 위해 한 가지 더 공개한다며 녹음 음성을 공개했다. 지난 2014년 광주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뒤 김 씨는 광주 교도소에 수감됐었는데 이때 그와 대화를 나눴던 동료 재소자의 증언이다.

 

동료 재소자는 김씨가 제주에서 징역을 살았을때 다른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다, 근데 자기는 운이 좋게 빠져나갔다,  제주도 경찰들은 멍청하다, 나는 똑똑하다 이렇게 막 이야기 했다고 하며, 방화사건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우리는 알고 싶은 게 참 많다. 2006년 경찰로부터 송치된 사건이 어떻게 2007년의 번호를 갖게 됐는지, 무엇 때문에 8개월이란 시간 동안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고 왜 하필 새 지검장의 인사가 발표되던 날 사건을 종결한 건지 여전히 우리는 알고 싶다. 하지만 우리의 질문보다 더욱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원룸에 살던 피해자 이 씨의 죽음에 대한 규명일 것이다.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면서 돌아보지 않았던 경찰과 피의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뒤 재수사를 지휘하지 않았던 검찰. 수직적이고 경직된 그 시절 검경의 관계 사이에서 노형동 원룸 방화 살인 사건은 내내 표류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14년이라는 그 긴 표류가 이제라도 정의란 항구를 향해 방향을 틀기를 그리고 그 마지막 항해의 길잡이는 검경의 진정한 협력이 되기를 그리하여 늦었지만 이번에는 꼭 법의 심판이라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우리는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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