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커피와 경제

ˍ 2020. 9. 8.

(EBS의 커피와 경제의 관계 강의를 정리한 내용)

 

커피는 사실 세계 경제사와 아주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커피 하우스에서 보험이 탄생했고 주식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이 커피 한 잔에 담긴 경제학 이야기 한번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몇 잔의 커피를 드셨습니까? 전세계적으로 하루에 22억 잔, 세계 커피 시장 규모가 2조 3000억 달러, 2456조 원에 해당합니다. 어마어마한데요. 이 커피는 도대체 어떻게 세계인을 사로잡게 됐을까.

 

보스턴 차 사건

미국을 중심으로 한번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에 커피가 소개된 것이 17세기 후반입니다. 미국인들은 원래 이전부터 굉장히 즐겨왔던 문화가 바로 차 문화입니다. 차 문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는데 미국의 물자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던 바로 영국의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EIC)). 이 동인도 회사가 식민지인들을 대상으로 차를 판매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되니까요.

 

그때 18세기 중엽부터 미국인들은 더 이상 차 문화를 즐기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영국의 재정부 장관이죠. 찰스 타운센드. 수많은 영국의 식민지들에 영국 주둔 국군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주둔군에게 뭔가 재정 지원을 해줘야 되니까 뭘 고민했느냐, 이 차에 대해서 많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라는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인들은 어떻게 할까요. 네덜란드나 그밖의 유럽 여러 등지에서 차를 밀수하기 시작합니다.

 

차 무역을 담당하던 영국 동인도 회사는 경영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영국 정부는 결국 수출 관세를 면제해주고 아메리카 대륙의 차 거래에 독점권을 동인도 회사에 부여하는 관세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동인도 회사는 다시 아주 싼 값의 차를 여러 식민지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밀수업자들은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차 과세에 대한 미국인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집니다.

 

보스턴항에 정박해 있던 영국 상선에 뛰어들어가서 차 상자를 바다에 버립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영국 식민지와 미국 간의 본격적인 무력 충돌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보스턴 차 사건(1773년 12월 16일)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차에 대해서 부정적 편견을 갖게 됐고, 커피가 차와 홍차를 대신해서 미국인의 아침 식탁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커피 하우스

17세기 후반 커피 붐과 더불어서 유럽 전역에 걸쳐서 카페인 문화가 대대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커피 하우스에서 번성하게 이릅니다. 커피 한 잔 값이 1에서 2페니 정도 됐었어요. 1에서 2페니만 있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정말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누구는 학생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구는 교수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커피 하우스를 통해서 대화의 장이 열린 소위 말하는 페니 대학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부르주아 상인, 그리고 지식인들이 만나서 엄청나게 많은 교류를 하고 하는 장이 되었고 공개적인 토론으로 이어져서 순식간에는 각종 경제, 사회, 정치 문제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누가 이야기 했습니까? 네, 바로 애덤 스미스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런던 브리티시 커피 하우스에서 집필됐다는 사실. 애덤 스미스는 1770년 4월에 런던에서 머물면서 그때부터 친구들과 만나서 책의 챕터를 논의하고 출간을 준비했습니다. 그 장이 바로 이 커피 하우스였습니다. 브리티시 커피하우스의 운영자가 스코틀랜드 출신이어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성인들이 정말 많이 모였습니다. 그는 이 커피 하우스에 국부론의 일부를 미리 배포하고 커피 하우스에 모인 지식인들하고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학회에 나가면 준비하고 있는 논문의 일부를 발제를 하면 여러 전문가들이 비판도 하고 더 좋은 제안도 해주면서 고도화된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모습들이 당시 커피 하우스에서 연출됐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커피하우스와 보험

런던 하면 뭐가 떠오릅니까? 저는 글로벌 금융 허브다 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커피 하우스에서 보험이 탄생했고 주식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영국의 커피 하우스들은 저마다 단골 손님들의 유형이 달랐었습니다. 의사, 정치인, 상인, 변호사. 이렇게 수많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커피 하우스가 따로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국제 보험업자 협회. 런던 로이즈. 이 런던 로이즈도 주로 뱃사람과 무역 상인들을 단골 손님으로 해서 운영되었던 커피 하우스입니다. 에드워드 로이즈가 기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7세기 후반에 영국은 네덜란드의 뒤를 이어서 패권국가가 되자 수많은 선박들이 런던에 방대한 양의 물자를 실어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가 손해를 입었을 때 보상하는 해상보험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이 로이즈 커피 하우스는 17세기 후반 런던의 항구에서 배가 입항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24시간 영업을 했었습니다. 가게 주인인 에드워드 로이즈는 입항에 있는 상선에 대해서 정보를 팸플릿으로 작성해서 가게에 두었습니다. 이게 당시 로이즈 레터고 훗날 로이즈 뉴스가 됩니다. 이 서비스가 정말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해운이나 무역 관계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고 또 사람들이 각자 돈을 내서 사고가 일어나면 그 돈으로 보상해 주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서 이것이 바로 손해보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정말 재밌게도 로이즈는 커피하우스 시대의 전통을 계승해서 지금도 보험거래를 중개할 뿐 보험을 판매하진 않고 있고 여전히 직원들을 웨이터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커피하우스와 주식

주식거래마저도 17세기 말 갤러웨이와 조나단이라는 두 개의 커피 하우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695년에는 이미 140개 회사의 주식이 국채나 증권 또 외국 통화와 함께 왕립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중개인은 품위가 없다는 이유로 왕립거래소로부터 쫓겨나서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조나단 커피 하우스에서 주식 거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1748년 발생한 화재로 이 커피 하우스 조나단은 모조리 불타버렸고 그 뒤에 재건된 조나단이 런던 증권 거래소가 되었고 커피 하우스가 런던 증권 거래소의 모태인 거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다시 21세기로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원유를 제외하고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단일품목 기준으로는 교역량이 가장 많은 품목이 커피입니다. 국내 커피 시장 규모도 2016년 약 5조 9000억원 규모에서 2018년 6조 8000억원 규모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국제커피기구는 지난 5월에 보고서를 발표를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집밖에서의 커피 수요는 감소했지만 단기적으로 집 안에서의 커피 수요는 증대되는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커피 수요 증대가 집 밖에서의 커피 수요 감소를 상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역시 커피마저도 코로나19의 충격을 벗어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됩니다. 2020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4.9%로 전망됩니다. 엄청난 충격인 것입니다. 이렇게 충격 속에 커피도 피해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정점을 찍고 완화되고 경제도 회복되는 과정에서 커피 수요도 다시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적으로도 커피는 바로 교류의 장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교류 속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모이고 보다 나은 경제학 이론이 나왔고 또 손해보험이라든가 그밖의 주식거래와 같은 다양한 경제적인 이 교류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류의 장이 있을 때 새로운 산업이 융성하고 더 혁신적인 성장을 위한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혁신 경제는 '교류'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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