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즈니스 리뷰 석유

ˍ 2020. 9. 4.

EBS에서 석유가 세계 경제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경제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김광석 경제전문가가 나와서 설명하는 비즈니스 리뷰라는 방송을 보게 되어서 유익한 내용인 것 같아서 정리해 보았다. 아래가 9월 3일 방송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석유왕이라 불리는 인물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석유 에너지 시대를 얘기하는 데 있어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바로 록펠러. 1860년대 오하이오주에서 이 존 록펠러의 석유 중개 사업이 시작됩니다. 한때 미국 석유 시장의 95%를 장악했던 스탠다드 오일을 설립한 그 해가 바로 1870년이거든요. 1897년까지 운영하면서 최대 주주로 활약합니다.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는 자체적인 배관이나 유조차, 운송 네트워크까지 다양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기업보다 더욱 성장이 빨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300종이 넘는 이 석유 기반의 상품들을 제조했는데요. 타르, 페인트, 바셀린, 츄잉 껌, 수많은 석유 기반의 상품들을 제조하게 됩니다. 1870년대말이 되면서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가 정제하는 석유는 미국 전역의 90%를 넘어섭니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지불할 수 있는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 때문에 독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이릅니다.

 

1916년 록펠러는 개인 자산 10억 달러를달성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됩니다(2018년 기준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160억 달러로 한화 약 18조원).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7대 석유 회사 세븐 시스터스, 일곱 자매라고 불리는 석유 메이저가 국제 석유시장을 재패합니다. 일곱 자매는 1940년대 무렵 전 세계 석유거래의 88%를 담당하는 유정을 소유하게됩니다.

 

이들은 석유 개발 상류부터 또 판매 하류까지 수직적 통합이나 또 지속적인 기술개발 그리고 석유 자원 보유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진입 장벽을 형성하기도 했고 또 이를 통해서 한동안 국제 석유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기도했습니다. 이 석유는 국제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일쇼크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차 오일쇼크를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1973년 10월로 한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일제히 이스라엘에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제4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는데요. 이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이집트와 시리아를 격퇴시키고 아랍 국가들은 또 이스라엘을 지원했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게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게 되고 석유 생산량 감축이나 석유 가격인상 조치로 보복합니다. 이 보복조치로 인해 전 세계는 1차 오일쇼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일쇼크로 인해서 국제유가가 얼마나 크게 변동했는지를 한번 살펴볼게요. 1973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10월 달입니다. 당시 국제유가가 약 3달러에 해당됐었습니다. 그런데 딱 3개월이 지난 74년 1월, 4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맞물리면서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었던 1970년대 1차 오일쇼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출액 순위를 쭉 보면 1위가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입니다. 미국과 이란 간에 굉장한 긴장감이 돌았죠. 이란이 자꾸 핵을 보유하려고 하니까 미국이 뭐라고 합니까. 핵 보유하지 마, 그랬더니 이란이 말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미국이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이란에게 경제제재를 가하는 거예요. 이란이 OPEC 회원국 중에 세번째 형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란산 원유 공급이 안되면 유가가 어떻게 될까요. 치솟을 수밖에 없겠죠. 그런 모습이 지금 1차 오일쇼크 때도 나타난 것이라고 이렇게 짐작해볼 수 있는것이죠.

 

오일 쇼크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우리 경제의 구조 자체가 원유를 전량 어떻게 하는 나라입니까? 수입하는 나라잖아요. 그러면 수입 물가가 고스란히 반영되겠죠. 당시에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수출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끌어올리던 때라고 볼 수 있죠. 1973년 우리 한국 경제 성장률이 14.8%에 달했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순간이었어요.그런데 경제성장률은 맥없이 곤두박질쳤습니다. 1974년 바로 9.4%로 떨어집니다. 75년 7%대까지 떨어집니다. 우리 한국 정부는 물가 조정을 최우선 경제정책에 더 썼겠죠.당시에 석유륫값 같은 경우 30%까지 물가상승률이 이어졌습니다. 석유 난로를 쓰던 수많은 가정들이 등윳값이 28%나 올랐습니다. 당연히 겨울철 난방비 걱정이 굉장히 크게 늘었고요. 석유를 사기 위해 석유통을 2개, 3개씩들고 주유소를 찾아서 몇 미터씩 줄을 서고 있는 모습들이 예삿일이었습니다.

 

유륫값 인상이 곧 생필품값 인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고 당시에 화장지나 비누와 같은 여러 필수재들을 마구 사들이는 각종 생필품이 동이 나고 또 석유파동의 심각한 여파를 국민들은 물가쇼크로 실감을 했었던 그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1차 오일쇼크를 통해 우리는 물론 전 세계는 석유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뼈저리게 실감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1차 오일쇼크는 2차 오일쇼크에 비하면 나름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1976년 OPEC은 단기적으로 원윳값 인상에합의하고요. 이를 실행에 옮기면서 원유값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예를 들어볼게요. 코로나19로 경제 충격이 가해졌을 때 원유 수유가 급감했잖아요. 그런데 OPEC 회원국들이 원유 공급을 줄여나가자 원유감산 합의에 도출하면서 국제 유가가 다시 제자리에 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과 아주 유사하게 나타나는 특징들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던 와중에 1979년 당시 세계 석유공급의 15% 수준을 점하고 있던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터집니다. 

 

이란은 국내 정치가 불안해지니까 석유 생산량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또 석유의 전면 수출 금지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1차 오일쇼크를 경험했던 투기자본들은 석유에 대한 매점매석은 물론이고 시장 조작까지 횡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차 오일쇼크로 인해서 1980년 8월 12달러 수준이었던 원유 가격이 30달러가 됩니다. 엄청난 국제 유가 상승이 이어진 것이고요. 그리고 39달러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최근 국제 유가 동향은?

국제 유가의 흐름이 심상치않게 전개됩니다. 4월 들어서 서부 텍사스 원유가격이 배럴당 '마이너스' 37.6달러를 기록합니다. 물건을 파는데 돈도 주는 경우가 있나요? 지금 그런 경우잖아요. 어떤 경우에 물건을 주면서 돈도 줄까요. 아마도 쓰레기가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국제 유가가 이렇게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건 역사 이래 처음입니다. 

 

마이너스 국제 유가를 기록할만큼 원유가격이 급락한 이유는 원유 수요가 크게 줄고 원유를 보관하는 창고에 원유가 가득 차서 공장 가동이 안이루어지고 원유 수요가 없을 텐데 원유 공급이 계속 이루어지니까 가격이 너무나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OPEP 플러스(석유수출기구인 OPEC 회원국과 주요 10개 비회원 산유국의 연대체) 회원국들이 지난 4월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를 합니다. 그러면서 국제 유가가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감산 이행을 할까 이부분에 대한 의문이 들어요.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 산유국들은 원유를 더 많이 공급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감산 합의에 도출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거예요. 나 빼고 나머지가 다 감산했으면 하는 거죠. 감산 합의를 했지만 감산의 이행이 정말 지켜질지는 의문에 아직 많이 있는 것이죠. 어쨌든 감산 합의 이행이 차질없이 이행된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서 원유 수요가 줄어든 이 수요 감소폭 만큼을 감산량으로해결할 수 없다. 감산량 이상의 수요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유가의 회복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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