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소금의 경제사

ˍ 2020. 9. 7.

(EBS에서 소금이 역사와 경제사에 끼친 영향에 대한 강의를 보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래가 그 내용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 그 만찬을 하는 동안 유다의 '이것' 그릇이 엎어져 있습니다. 로마에는 '이것' 길이 있다고 하는데 무슨 길인지 아십니까? 봉급을 영어로 샐러리(salary) 라고 합니다. 이 샐러리라고 하는 영어 단어는 라틴어 '이것'을 뜻하는 용어 Salarium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세기 이전까지 황금이라고 불릴 만큼 귀하게 여겼던 물건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바로 소금입니다. 세계 경제사를 이야기하는데서 빼놓을 수 없는 소금을 지금부터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사시대로 잠깐 돌아가 볼게요. 과거에 오솔길을 만든 건 포유동물이란 사실 아십니까? 지각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바다가 되기도 하죠. 산속에 암염지대가 형성이 됐었는데 이 포유동물들이 소금을 찾아서, 염분을 찾아서 이 암염지대를 횡단하면서 오솔길이 생성됐다는 것이죠.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 인류도 역시 소금 섭취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 포유동물이 만들어 놓은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염분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의 오솔길이 형성되었다는 것, 소금은 길을 만든 그 계기가 되었다라는 사실입니다. 농경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질병이 더 많이 전파되기 시작하는데 그 치료제로 쓰였던 것이 바로 소금이었습니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어떤 필요가 생겼냐면 오늘 수확한 배추를 1년 내내 먹어야 될 필요성이 생기는 거예요. 소금을 활용해서 여러 식음료 제품들을 저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바로 소금이 냉장고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결국 음식을 저장하는 수단으로도 소금이 활용되었습니다.

 

로마제국과 소금

국가의 탄생이나 흥망성쇠에 관해서도 소금은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마제국입니다. 로마의 출발은 아주 조그마한 어촌에서 소금 거래를 하던 몇몇 소금 장사꾼들이 티베르강(Tiber River) 언덕에서 세웠던 도시국가 입니다. 당시 금값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졌던 소금을 파는 데 있어서 장기간의 내륙운송이 큰 문제가 됐었겠죠. 이 티베르강 하구의 소금은 하천을 통해서 바로 로마 시대로 운반할 수 있었고요. 그 덕에 로마는 출발부터 경제적 기반이 탄탄할 수 있었습니다. 소금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소금을 대륙으로 수출하고 또 질 좋은 소금이 소문이 많이 나면서 유럽 대륙 각지에서 소금 장사꾼들이 막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길이 발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의 길의 그 기원이 소금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운반되던 이 길을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 길들이 로마 군사들의 교통로로 이용되면서 로마제국의 부흥의 기반이 되고 로마가 부강해지면서 로마 인구가 200만 명에 다다릅니다.

 

이 소금길로 운송된 소금 유통량만 해도 연 1만 톤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정말 무거운 소금을 나르는 상인들에게 골칫거리가 있었는데, 뭘까요? 포장이 안 된 불편한 도로를 운행해야 되고 소금이 금값이니까 정말 많은 도적들이 들끓었습니다. 골칫거리가 바로 도적들이었습니다.

 

지역 영주들은 일단 길을 평평하게 잘 닦아놓습니다. 마차가 불편없이 왕래할 수 있게 길을 내주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까는 거죠. 영주의 기사들은 안전을 책임졌습니다. 치안 서비스, 경찰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이렇게 고속도로, 치안이 완전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상인들은 영주에게 뭐를 냈을까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통행료 내지 않습니까? 이 상인들도 영주에게 통과세를 기꺼이 지불하고, 그것이 소금길 세금이 되는 겁니다. 이 덕택에 영주와 도시들은 앉아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입니다.

 

영주들은 서둘러서 소금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소금길 통행세를 당연히 적극적으로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오래지 않아서 이러한 소금길이 유럽 대륙 전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소금 장사들이 소금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가면서 너도 나도 이 돈벌이에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소금길만 운영하던 도시들이 소금 무역에 직접 참가하면서 소금 무역을 통한 시의 재정이 점점 불어납니다. 정부가 소금을 독점하는 전매 제도가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돈벌이가 되는 소금 판매업을 전매 제도로 또 만들었고, 또 무역로를 닦아서 소금길을 만들기도 하고 그때부터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기 시작합니다. 1세기경에 로마의 해수면이 크게 높아지면서 이제 염전을 잃기 시작했어요. 흑해로부터 소금을 수입하기에 이르렀고 부의 근원을 상실하면서 또 경제력도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로마의 흥망성쇠에는 소금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통치수단으로서의 소금

국가의 통치수단으로 소금이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국민 한 사람당 정해진 가격에 일정 기간마다 최소량의 소금 구입을 강제하고 그것을 통해서 소금세를 걷었고, 이 소금세를 가지고 국가 운영자금을 마련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입니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금세를 이용했는데요. 프랑스에서는 당시에 8살만 넘어도 모든 개인이 정해진 가격에 따라 매주 최소량의 소금을 사도록 강제를 했었습니다. 바로 가벨(Gabelle)입니다. 그런데 가벨의 폭리가 또 엄청나게 치솟습니다.

 

1710년, 생산비의 140배까지 폭리가 치솟았습니다. 당연히 농민들이 이 비싼 염세에 항의하면서 암거래에 가담하기도 하고 결국 농민 봉기까지 일어납니다. 1789년이죠. 프랑스 혁명. 이 프랑스혁명의 배경에도 소금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귀족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기도 하면서 반대로 일반 백성에게는 과도한 세금이 부과됐습니다. 이것이 원인이 돼서 생겨난 그 혁명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벨이 프랑스 혁명 도중인 1790년에 폐지가 됐고, 1805년쯤에 나폴레옹이 군비를 또 마련하기 위해서 다시 부활시키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최종적으로 가벨이 폐지된 것은 1946년이 됩니다.

 

소금을 이용해서 역사를 바꾼 인물이 아시아에도 있습니다. 기원전 221년인데, 누굴까요? 바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입니다. 소금 전매 제도와 소금 교육을 통해서 많은 수익을 얻었고 그 수익을 가지고 군대를 양성하고 무기를 표준화하고 대량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소금과 철의 전매 수입을 통해서 통일 자금을 비축했고 그것을 이용해서 통일의 성공을 거둔 역사적 인물 아닙니까? 사실 통일을 이루는 과정뿐만 아니라 통일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금과 철을 독점해서 이전 시대에 비해서 20배에 해당하는 이윤을 남깁니다. 이를 바탕으로 도로망을 정비하고 만리장성과 같은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소금과 경제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한 소금이 생산되는 곳이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데 한정되어 있었다, 그럼 당연히 희소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희소한 자원,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가격이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고 그 희소한 자원이지만 모든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그런 원자재였기 때문에 거래와 무역,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소금을 가진 자는 돈도 차지하고 권력도 차지할 수 있었던 이런 배경에는 바로 소금의 희소성이었다라고 볼 수 있겠죠.

 

희소성은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기본이 될 텐데, 오늘날의 경제학 기초이론의 토대가 되는 그 단어가 소금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경제적 가치는 희소성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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