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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샹폴리옹, 그리고 로제타 스톤

ˍ 2020. 9. 11.

(EBS에서 방송된 로제타 스톤에 대한 유익한 강의 내용 정리)

   

  곽민수(이집트 고고학자)

  •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
  • 영국 더럼대학교 박사 과정 수료
  • 주요 논문: <신왕국 이집트의 누비아 식민화와 신전 도시)등

현대적인 의미의 이집트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폴레옹(1768년~1821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그런데 이 인물은 이집트학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고 현대적인 의미의 이집트학이 형성되는 과정에 매우 크게 기여한다. 나폴레옹은 1799년에 이집트로 원정을 떠난다. 여러가지 정치적인 상황이 있었다. 프랑스 내부적인 정치상황도 있었고,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이집트로 원정을 떠나는 과정에서 5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갔는데, 병사와 함께 157명의 학자들도 데려간다. 군대가 치안을 확보한 상태에서 학자들은 마음껏 인문학적 조사를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이집트학이라는 학문은 형성되어있지 않았다. 따라갔던 학자들은 일반적인 의미의 고고학자나 박물학자, 측량술사, 건축가, 공학자, 이런 사람들이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로 원정을 가서 처음 이집트를 통치하고 있던 맘루크 군과 군사적인 충돌을 벌이는데, 그때 일어났던 전투를 보통 '피라미드 전투'라고 한다. 실제 이 전투가 벌어진 곳은 엠바베 평원이란 곳인데 피라미드에서는 약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러니까 기상조건이 나쁘지 않았다면 이 피라미드가 보였을 것이다.

후대에 그려진 피라미드 전투. 원 안에 피라미드가 보인다.

 

나폴레옹과 함께 이집트에 갔었던 학자들은 훗날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 열심히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했던 조사와 기록들을 모아서 출간물을 내놓는다. <이집트지(Description de l'Egypte)>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식 기록인데 무척 화려한 삽화가 들어가 있고 내용도 굉장히 알차다. 그리고 이 기록들을 토대로 유럽에서는 이집트학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근대적인 이집트학의 의지가 탄생한 것이다.

이집트지

 

이집트지도 나폴레옹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로제타 스톤이라고 하는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1799년에 피에르 부샤르 라는 공병 장교에 의해서 발견이 된다. 

 

이 유물은 고대 이집트어를 최초로 해독하는데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어를 최초로 해독하는데 성공한 인물이 바로 장 프랑수와 샹폴리옹(1790년~1832년)이다. 1822년의 일이었다. 로제타 스톤이 이집트어 해독의 단초를 제공했던 이유는, 이 비석은 똑같은 내용이 3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상단부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고대 이집트 문자, 일반적으로 상형문자라고도 알려진 신성문자가 쓰여져있고, 그 아래에는 데모틱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필기체가 쓰여져 있다. 가장 하단부에는 고대 그리스어가 쓰여져있다.

 

고대 그리스어는 당시 그러니까 18세기, 19세기의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냥 다 아는 언어였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영어 같은 그런 느낌의 언어였다. 내용을 알 수 있으니 훨씬 더 해독이 용이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샹폴리옹은 기존의 연구자들과는 좀 다른 발상의 전환을 시작한다. 바로 고대 이집트문자가 생긴 모양과는 달리 표음문자적인 속성이 강할 수도 있다라는 전제를 한 것이다. 매우 큰 발상의 전환이었고, 그 발상의 전환은 이집트 문자의 해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샹폴리옹이 기록한 고대 이집트문자의 음운표

이것은 샹폴리옹이 직접 기록한 고대 이집트 문자의 음운표인데 빨간색 네모 안의 새모양의 글자는 새라는 뜻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글자이다. 단지 영어로 A발음이 나는 글자일 뿐이다. 모양은 분명히 새이지만 이 글자는 발음만 갖고있는 글자인 것이다. 이와같은 발상은 샹폴레옹 이전에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발상이다. 

 

로제타스톤은 현재는 영국의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에서 전시 중에 있다. 영국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유물이다. 영국군의 경우에도 이유물을 프랑스군에게서 빼앗자마자 영국 본국으로 유물을 보냈고, 본국에서도 유물을 입수하자마자 박물관에서 전시를 시작했다. 언제나 관람객들이 붐비는 유물이다. 유물 자체의 사진을 찍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그리고 무척 화려한 방식으로 전시가 되어 있다.

영국 박물관의 로제타 스톤

 

그런데 로제타 스톤이 실제로 출토된 로제타 지역에 가면 이런 방식으로 아주 조악한 형태의 모조품만이 처량한 모습으로 전시가 되고있다.

로제타 지역의 로제타 스톤 모조품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에 가도 역시 로제타 스톤은 모조품으로 전시가 되고 있다. 이 로제타 스톤 모조품은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모든 유물들 가운데 유일한 모조품이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당연히 언제나 영국 측에 유물 반환을 요청한다.

카이로 박물관의 로제타스톤 모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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